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
파스칼은 1623년 프랑스의 오베르뉴 지방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수학에 비상한 능력을 보였다. 그가 젊었을 때의 여러 이야기들이 후에 페리에 부인이 된 누이 질베르트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그는 허약한 체질 때문에 과로하지 않도록 집에만 갇혀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들 교육은 처음에는 언어 공부에 한하여야 하며, 어떠한 수학도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학습에서 수학을 배제시킨 것이 오히려 소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가정교사에게 기하학의 특성에 관하여 질문을 하도록 했다.
가정교사는 그것은 정밀한 도형과 그것의 다른 부분의 성질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가정교사의 설명과 아버지의 금지 명령에 자극받아서 그는 노는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몇 주 만에 스스로 기하학적 도형의 많은 성질, 특히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평각과 같다는 사실을 은밀히 발견하였다. 어느 날 기하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들과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는 소년의 능력에 매우 놀라서 아들에게 유클리드<원론>의 복사본을 주었는데, 그 어린애는 그것을 탐욕스럽게 읽어서 빠르게 숙달하였다. 14세 때 파스칼은 나중에 프랑스 학술원이 된 프랑스 수학자 단체의 매주 한 번 모이는 모임에 참여하였다. 16세 때 그는 데카르트가 소년의 작품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아버지의 것임이 틀림이 없다고까지 추측한 원추곡선에 관한 소론을 썼다. 18세 땐가 19세 때에는 최초의 계산기를 발명하였는데, 그것이 르왕에서 정부의 회계감사를 하고 있었던 부친을 돕기 위하여 고안했다. 파스칼은 50여 개의 계산기를 만들었는데 그중 몇 개는 파리에 있는 한 발물관에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21세 때 기압에 관한 토리첼리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비범한 재능을 물리학에 사용하기 시작한 결과 유체역학의 '파스칼이 법칙'이 오늘날 고등학교에서 물리를 배우는 모든 학생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몇 년 후인 1648년에 그는 원추곡선에 관한 포괄적인 미발표 원고를 썼다.
이렇게 놀랍고 조숙한 활동은 파스칼이 건강이 나빠져 고생하면셔 수학과 과학의 연구활동을 포기하고 종교적인 명상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던 1650년에 돌연 막을 내렸다. 그러나 3 년 후 그는 짧은 기간 수학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그는 <수삼각형론,Traite du triangle arithmetique>을 저술하였고 유체압에 관한 여러 실험을 행했다. 페르마와 서신 왕래를 통하여 확률의 수학적 이론의 기초를 세우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1654년 말에 그는 재개된 활동들이 신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강한 암시를 받게 된다. 신의 암시는 그의 고삐풀린 말이 뉘일르의 다리 난간으로 돌진했으나 그 자신은 봇줄이 기적적으로 끊어져 겨우 목숨을 건졌을 때 나타났다. 그리하여 종교적 명상에로 충실하게 되돌아갔다.
파스칼은 1658년에 단 한 차례 수학으로 다시 돌아왔다. 치통으로 고통받고 있던 중 약간의 기하학적 착상이 떠올랐고 치통은 갑자기 사라졌다. 이것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8일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착상을 발전시켰는데, 이 기간에 사이클로이드의 거의 완전한 기하학적 설명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초기 프랑스 문학의 모델로서 읽혀지는 그의 유명한<시골사람에 대한 편지, Provincial Letters>와 <명상록,Pensees>은 짧은 생애의 끝무렵에 쓰어졌다. 그는 1662년 파리에서 죽었다. 데자르그와 파스칼은 같은 해에 죽었는데, 데자르그는 69세였으나 파스칼은 불과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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