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탈리아(Tartaglia Nicolo Fontana,1499-1557)
타르탈리아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499년에 브레시아에서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512년에 브레시아가 프랑스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침략과 더불어 만행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타르탈리아와 아버지(당시에 브레시아에서 우편배달부를 했다)는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당으로 피신하였으나 병사들이 끝까지 그들을 쫓아들어와 대학살극을 벌였다.
그 때 아버지는 죽었고 그는 모숨은 건졌지만 머리가 깨지고 턱이 갈라졌다. 어머니가 나중에 가족을 찾기 위하여 성당에 도착했을 때 아들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곤 가까스로 아들을 빼내어 왔다. 그러나 의료시설이 부족하여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상처난 개가 항상 상처난 곳을 혀로 핥는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아들에게 그렇게 해주었는데, 나중에 타르탈리아는 자신의 회복이 바로 어머니의 이러한 치료법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 때 입은 턱의 상처 때문에 일생 동안 말을 완전하게 할 수 없었으며, "말더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머니는 돈을 모아서 간신히 아들을 보름 동안 학교에 보냈는데 타르탈리아는 그 때 습자본 하나를 훔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고 그 후에 그것을 가지고 읽고 쓰는 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또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공동묘지의 묘비를 이용하여 공부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1557년에 베니스에서 죽었다.
타르탈리아는 재능 있는 수학자였다. 그가 처음으로 수학을 포술학에 응용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일반적으로 그가 16세기의 가장 훌륭한 이탈리아 산술서를 쓴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것은 당시의 수치계산과 통상관세에 관한 충분한 논의를 싣고 있는 두 권의 논문으로 되어 있다. 그는 또한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의 저작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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