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르그(Gerald Desargue, 1593-1662)
캐플러가 죽은 지 9년 후인 1639년에 대단히 독창성이지만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원추곡선에 관한 논문이 파리에서 발표되었다. 그것은 공학자이며 건축가이고 한때 프랑스 육군 장교였으며 1593년에 리용에서 태어나 1662년경 그 논문은 다른 수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잊혀졌고 모든 발행본들은 사라졌다. 두 세기 후 프랑스 기하학자 샤슬레 (Michel Chasles, 1793-1880)가 지금까지 표준처럼 되어 있는 그의 기하학의 역사를 집필할 때, 데자르그의 논문의 가치를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6년 후인 1845년에 샤슬레는 데자르그의 제자인 라 이르(Philippe de la Hire, 1640-1718)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 논문의 필사본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 논문은 종합 사영기하학의 초기 발전단계에서의 고전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데자르그의 이 얇은 책이 처음엔 무시된 것을 설명하는 여러 이유들이 제시될 수 있다. 그것은 2년 먼저 데카르트에 의해 소개된 더 유명한 해석기하학에 의해 빛을 잃었다. 기하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새로운 강력한 도구를 발전시키는 일과 무한소를 기하학에 응용하려는 시도에 정력을 쏟고 있었다.
또한 데자르그는 보통과 다른 저술 방식을 택했다. 그는 약 70개의 용어들을 소개했는데, 대부분 알기 어려운 식물학에서 따온 것이었고 그중 단 하나 '대합'(involution)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합은 비평가들이 그것을 날카로운 비평과 조소를 위해 뽑아낸 데자르그의 특수용어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존되었다.
데자르그는 원추곡선에 관한 책 외에도 다른 책들을 썼는데, 그중 하나는 어린이들이 노래를 잘 하도록 가르치는 법에 대한 논문이다. 그러나 그를 17세기 종합 기하학의 가장 독창적인 기여자로 손 꼽히게 한 것은 원추곡선에 관한 얇은 책이다. 케플러의 연속성의 원리로 시작되는 이 책은 대합, 조화영역, 호몰로지, 극과 극선, 투시도 등 오늘날 사영기하학 수강생들에게 친숙한 주제들에 대한 많은 기본 정리들의 대부분을 발전 시켰다. 흥미 있는 한 개념은 극과 극선의 개념이 구까지 또 어떤 다른 2차곡면으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데자르그는 얼마 안 되는 2차곡면만을 알고 있었고 아마도 대부분의 이 곡면은 1748년 오일러가 완전히 열거할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데자르그의 중요한 두 삼각형의 정리를 발견할 수 있다. "만일 두 삼각형이 동일한 평면 위에 있든 아니든 간에, 대응하는 꼭지점을 연결하는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도록 위치해 있으면 대응하는 변의 교점은 동일 직선상에 있고 또 그 역도 성립한다."
데자르그는 파리에서 살고 있던 30대에 일련의 무료 강의를 통하여 동시대인에게 상당한 감명을 주었다. 그의 논문은 데카르트에 의해 인정받았고 파스칼은 그의 영감의 많은 부분의 근원을 데자르그에게 얻은 적이 있다. 이에 이르는 상당한 노력으로 아폴로니우스의 <원추 곡선론>의 모든 정리들이 데자르그의 중앙 투시법에 의한 원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는 새로운 기하학이 거의 세워지지 않았고 그 분야는 제르곤, 퐁스러, 브리앙송, 듀팽, 샤슬레, 슈타이너 같은 사람들에 의해 크게 발전된 19세기 초반까지 동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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