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 / 2019. 1. 25. 18:14

해리엇(Thomos harriot, 1560-1621)과 오트레드(William Oughtred,1574-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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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Thomos harriot, 1560-1621)과 오트레드(William Oughtred,1574-1660)

해리엇(Thomas Harriot, 1560-1621)은 대부분의 생애를 16세기에 살았지만 위대한 저서가 17세기에 발간된 또 한 사람이 수학자이다. 그는 미국인에게 특별한 관심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1585년에 롤리 경에 의해서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라 불리지만 그 당시 버지니아라 불렸던 곳의 지도 제작을 위해 측량사로서 그렌빌경의 탐험대와 함께 신대륙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수학자로서 해리엇은 흔히 대수학자들의 영국학파의 설립자로 간주되고 있다.

이 분야의 위대한 책인 <해석술의 연습, Artis analyticae praxis>은 그가 죽은 후 10년까지 발간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주로 방적식 이론을 다루고 있다. 거기에는 1, 2, 3, 4차방정식에 관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는데, 주어진 근을 갖는 방정식의 형태, 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 원래 방정식의 근과 어떤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근을 가지는 또 다른 방정식에로의 변환, 방정식의 수치해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내용의 대부분은 비에트의 논문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해리엇의 책에서는 더 완벽하고 훌륭하게 체계적으로 취급하였다. 해리엇은 미지수는 모음 문자, 상수는 자음 문자를 사용하는 비에트이 방식을 따랐지만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사용하였다. 그는 비에트의 지수 표기법을 개선하여 aa를 a2 으로 aaa를 a3 등으로 나타내었다. 그는 또한 "...보다 크다" "...보다 작다"는 의미의 기호 >와 < 를 처음 사용하였는데, 이 기호를 사람들이 즉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해이엇은 대략 같은 시기에 갈릴레오와는 독립적으로 태양의 흑점을 발견했고,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는 등 천문학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그는 1621년에 암으로 죽었다.

해리엇의 대수에 관한 유저가 출판된 같은 해(1631)에, 영국에 수학지식을 전파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던 오트레드의 유명한 책 <수학의 열쇠, Clavis mathematicae>의 초판이 출간되었다. 오트레드(William Oughtred, 1574-1660)는 가장 영향력 있는 17세기 영국의 수학 저술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성공회의 직업 목사였으나 수학에 흥미를 지닌 학생들을 자유롭게 개인지도하였고 그 학생들 중에는 후에 각각 수학자, 건축가, 천문학자로 잘 알려진 월리스, 렌, 워드 등이 있다.

오트레드는 저술을 통하여 150여 가지 수학 기호들을 제시하고, 또 그것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 중 세 가지만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을 곱셈기호[X]와 비에서 자주 사용되는 4점[::] 그리고 두 수 사이의 차를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되는 기호 [~]이다. 그러나 가위표는 곱셈기호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라이프니츠가 제기했듯이 그것은 알파벳의 X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해리엇은 곱셈기호로 점 [·]을 때때로 사용했지만 라이프니츠가 이 기호를 채택하기 전까지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는 또한 곱셈기호로 모자모양 기호[∩]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집합론에서 교집합을 나타낸다. 나눗셈기호[÷]도 역시 1659년에 스위스의 란(Johann Heinrich Rahn, 1622-1672)에 의해 쓰여진 대수책에 인쇄되어 처음으로 나타나면서 17세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몇 년 후 이 책이 번역되면서 기호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 나눗셈 기호는 유럽대륙에서는 뺄셈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기하학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닮음기호(~), 합동 기호(=)는 라이프니츠가 만들었다. 오트레드는 단순 계산자를 일찍이 1622년경에 만들었으나 1632년에야 비로소 책으로 발간 하였다.

1618년에 라이트에 의하여 발간된 네이피어의 <데스크립티오, Descriptio>의 영국판에 달린 주목할 만한 작자 미상의 16페이지 짜리 부록의 저자는 오트레드일 것으로 여겨지는데, 거기에서 곱셈기호로 가위표가 처음 사용되고 로그값을 계산하는 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처음으로 제안되었으며 최초의 자연로그표가 나타났다. 오트레드는 또한 계량학(gauging:통의 용량을 계산하는 과학)에 관한 저술을 하였으며 수학적 오락에 관한 프랑스 책을 번역하여 편집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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