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 / 2019. 1. 25. 20:25

칸토어 (Georg Ferdinand Ludwig Philip Cantor,1845-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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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토어 (Georg Ferdinand Ludwig Philip Cantor,1845-1918)

칸토어는 1845년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덴마크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1856년에 부모와 함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신교로 개종한 유태인이었고,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카톨릭 신자였다. 그 아들은 중세신학, 연속성과 무한에 관한 복잡한 논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그는 공업 기술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제안을 철학, 물리, 수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포기하고 취리히, 괴팅겐,베를린(이 곳에서 바이어슈트라스의 영향을 받았고, 186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869년부터 1905년까지 할레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하다가 1918년 할레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칸토어의 초기 관심사는 정수론, 부정방정식, 삼각급수에 있었다. 그는 삼각급수의 미묘한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해석학의 기초로 눈을 돌렸던 것 같다. 그는 수렴하는 유리수 수열을 활용하고, 데데킨트의 기하학적인 견해를 반영한 취급법과는 다른 무리수의 아름다운 취급법을 만들어 내고, 1874년에 집합론과 무한이론에 관한 혁명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후자의 연구로, 칸토어는 수학 연구의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였다. 그는 논문에서 실제적인 무한의 수학적 취급에 기초를 두어 초함수이론을 발전시키고, 유한수들의 계산법과 유사하게 초한수의 계산법을 만들었다.

칸토어는 종교에 깊이 빠져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제논의 역설과 관련된 논쟁의 연장인 그의 논문은 무한의 실체에 관한 중세 학자의 고찰에 대한 그의 동정적인 경의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견해는 상당한 반대에 부딪쳤는데 주로 베를린 대학교의 크로네커로부터였고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직을 얻으려는 칸토어의 노력을 확고 부동하게 반대한 사람도 크로네커였다. 오늘날 칸토어의 집합론은 거의 모든 수학 분야에 스며들었고, 위상과 실함수론의 기초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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