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 / 2019. 1. 26. 09:32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e, 1854-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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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e, 1854-1912)

일반적으로 그의 시대에서 가장 뛰언난 수학자로 알려진 앙리 푸앵카레는 1854년 프랑스의 낭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 공화정의 대통령을 지낸 유명한 정치가 레이몽 푸앵카레의 사촌이었다. 1875년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후 앙리는 1879년 광산학교에서 채광기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같은 해에 파리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산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카엥 대학교의 강사로 임명되었으나, 2년 후 파리 대학교로 옮겨 1912년 죽을 때까지 수학과 과학의 여러 교수직을 가졌다.

푸앵카레는 수학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능통한 마지막 학자로 묘사되고 있다. 확실히 그는 이 분야의 놀랄 만한 영역에 능통했고 발전시켰다. 그는 매년 소르본에서 순수 또는 응용 수학의 다른 주제에 관하여 명쾌한 강의를 하였는데, 이 강의의 대부분은 곧 바로 발행되었다. 그는 30여 권의 책과 500편의 전문 논문을 쓴 다작의 학자였다. 그는 또한 수학과 과학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는 데 가장 능력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비싸지 않은 보급판 해설서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모든 직업의 사람이 널리 읽었으며, 그것은 명쾌한 설명과 매력적인 스타일의 최고의 걸작이고,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사실상 푸앵카레의 인기 있는 책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나서 프랑스 작가의 최고의 영예인 프랑스 학술원의 문학부분 회원으로 뽑혔다.

푸앵카레는 한 분야에 결코 오래 머물려고 하지 않았고, 이 영역 저 영역으로 재빠르게 옮겨다니길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동시대인 중의 한 사람은 그를 '식민지 개척자가 아닌 정복자'로 묘사했다. 미분방정식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은 그것의 존재 정리에 관한 것이었다. 이 논문으로 해서 그는 자기동형함수, 특히 소위 제타-푸크스 함수의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푸앵카레는 이것이 대수적 계수를 가지는 2계 선형미분방정식을 푸는 데 이용될 수 있음을 보였다. 푸앵카레는 라플라스처럼 확률론 분야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그는 또한 20세기의 관심분야인 위상수학에 참여하여 오늘날 수열적 위상수학의 푸앵카레군에 그의 이름이 나타난다. 응용 수학에서 이 다재다능한 천재는 광학, 전기학, 전신, 모세관현상, 탄성, 열역학, 전위이론, 양자이론, 상대성이론, 우주진화론 같은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다.

푸앵카레는 전 생애 동안 어눌하고 근시이며 맹추같았지만, 무엇이고 한 번 읽은 것은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고 즉각 상기해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안정하지 못하고 서성거릴 때 수학을 머릿속에서 연구하고, 생각이 완성되면 반드시 새로 쓰거나 삭제 없이 재빨리 논문으로 만들었다. 그의 성급함과 많은 저작에 대비하여, 우리는 신중하게 준비한 가우스의 저술과 가우스의 좌우명 '적지만 익은'을 회자하곤 한다.

푸앵카레의 손재주 없음에 관한 일화가 있다. 그는 어느 손으로도 똑같이 못 쓰기 때문에, 양손잡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는 데는 재주가 없어서 이 분야의 학교 성적은 일률적으로 영점을 받았다. 졸업할 때 그의 급우들이 장난으로 그의 예술적 걸작을 일반에게 전시하기로 계획했다. 그들은 각 작품에 그리스어로 쓴 '이것은 집입니다..'이것은 말입니다." 등의 꼬리표를 조심스럽게 붙였다.

푸앵카레가, 모든 수학이 그의 학문범위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일 것이다는 말은 적절하다. 수학이 현대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속도로 커왔기 때문에 그런 영예를 다시 얻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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