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모든 점으로 보아 수학분야에서 아일랜드의 가장 위대한 명성을 지닌 해밀턴은 1805년 더블린에서 태어나서,잠깐씩 다른 곳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면, 전 생애를 그 곳에서 보냈다. 그는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겨우 한 살 때 그를 열심히 그러나 언어에 치중되게 교육시켰던 삼촌에게 양육이 맡겨졌었다. 해밀턴은 천재임이 판명되었고, 13세가 되었을 때에는 나이만큼이나 많은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그는 실제적인 성과는 없었으나, 고전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갔고, 일생의 열망이 된 시 쓰기에 빠져있었다. 그는 위대한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와 절친한 친구이며, 서로 존경하는 사이가 되었다. 해밀턴은 15세가 되어서야 수학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 변화는 더블린의 박람회에서 어리지만 자신의 능력을 시범보인 미국 암산 학자 콜번(Zerah Colburn)을 만남으로써 일어났다. 얼마후 해밀턴은 우연히 뉴턴의 <보편산수, Arithmetica universalis> 한 권을 얻었다. 그는 이 책을 매우 열심히 읽어 해석기하학과 미적분학을 숙달하였다. 그 다음에 4권의 <프린키피아, Principa>를 읽고, 유럽 대륙의 위대한 수학적 저서를 공부하였다. 라플라스의 <천체 역학, Mecanique celeste>을 읽으며 수학적인 오류를 지적하였고, 1823년 상당한 관심을 끌었던 그것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이듬해 그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해밀턴은 겨우 21세이며 대학 재학시절인 1823년에 아일랜드 왕립 천문학자, 던싱크 천문대장과 대학교 천문학 교수에 만장일치로 임명되었다. 그 직후 수학적 이론만으로 축이 두 개 있는 결정체에서의 원추형의 굴절을 예견하였는데, 그 후 이것은 물리학자들의 실험을 통하여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1833년 복소수의 대수가 실수의 순서쌍의 대수로 나타나는 중요한 논문을 아일랜드 학술원에 제출했다. 1835년 그는 나이트 작위를 받았다. 1833년의 논문에 따르면, 해밀턴은 수년 동안 때때로 실수의 순서 3쌍과 순서 4쌍의 대수에 관하여 생각했으나, 연산의 잘 알려진 법칙을 보존하고 그 연산을 자신의 물리적 고찰에 맞도록 곱셈을 정의하는 문제에서 항상 난관에 부딪혔다. 마침내 1843년 번개같이 스치는 영감으로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교환법칙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최초의 비가환대수인 사원수대수를 돌연 탄생시켰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소위 해밀턴 함수와 동역학의 해밀턴-야코비 미분방정식에서 해밀턴의 이름을 만난다. 행렬이론에서 해밀턴-캐일리 정리, 방정식, 다항식이 존재하고, 수학적 오락으로 정12면체에 관한 해밀턴의 게임이 있다.
병과 가정불화로 인한 비극적인 말년에, 새로 설립된 미국의 국립 과학원이 그를 최초의 외국 준회원으로 선출하였던 일을 상기하는 것은 아마 미국 사람들을 기분좋게 할거이다. 또 다른, 해밀턴에게 주는 드물게 보는 명예와 경의의 한 예는 1845년 그가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제2회 영국 학회에 참석했을 때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신성한 방에서 일주일 동안 묵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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